지난 2002년 박선영 교수님을 알게 된 학생입니다.
아마 03학번, 04학번,05학번 학생들은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교수님일 껍니다.
지난 2003년부터 학교에서 강의를 하지못했으니까요.
잠시 소개해 드리자면
1997년 포항공대에 공개채용으로 임용되어
중국사와 일본사를 학교에서 강의하셨습니다.
중국 현대사와 일본 제국주의 사를 주로 연구하고 계십니다.
2002년 말 조교수 임용심사에서 탈락하고 난 뒤 그 이후 3년째 학교와 재판을
하고 있는 교수님이십니다.
탈락한 이유는 연구 실적 미달과 강의의 질이 형편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포시스 게시판을 보고 (아마 2002년도 조교수 임용과정에서 나타났던 일들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많은 글들을 이 사건을 두고 올라 왔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여름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알 정도로이슈화 되었지요)그 일들이
궁금해서 그 때 이후로 자주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http://www.sunyoungsamo.pe.kr/ (그 일이 궁금하시면 이곳을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꼼꼼히 읽어보시고 궁금하시면 저에게 메일을 주시면 자세히 알려 드립니다)
처음에는 어떤 상황인지 모른채 개인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 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구체적인 자료들과 상황적인 것들을 살펴 보면서
학교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연구 실적 미달이라는 것과 강의의 질이 형편 없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 임을 아무것도 모르는 공대생이라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처음에는 많은 충격을 받았지요.
포항공대를 커다란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들 대부분은 교수 임용 과정에
그러한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 가장 멋진 대학이고 가장 멋진 환경을 가지고 꿈을 가진 대학
이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저역시 그러한 입장에서 이 일을 처음에 바라보았고
이것을 깨어 나가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
혼자서 학교라는 거대한 산을 두고 싸워가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포항공대에는 이러한 일들이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꿋꿋이 자료를 준비하시고 학교의 논리에 대해 증거를 가지고 대응해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올바른 것은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지난 2년동안 거의 매달 재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교수님을 응원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음에도 인문동 3층 끝방에서 이러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는
교수님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지난해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학교에서 명도 소송(방을 차지하고 있을 자격이 없으니 방을 비워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을 때 어떻게 이렇게 까지 학교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사립학교법이 개정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법이 개정되면 이 일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소식에 기뻐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법은 계속 미뤄 지고 있고 그에 따라 재판도 계속 미뤄 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최근 인문사회학부가 무은재 기념관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박선영 교수님은 아직 교수로써 자격을 잃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껏
학교에 계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무은재 기념관을 가보니 다른 교수님들의 방은 문패가 있고 방이
다 배정되어 있는데 교수님 방은 없었습니다.
비어 있는 방이 있었는데
문패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곧 인문동에는 수학과가 들어 오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수님은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됩니다.
있다 할지라도 수학과 건물에 홀로 인문사회학부 교수님이 남는 상황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교수님께서 그러한 상황을 그냥 볼 수 없어서 무은재 기념관의 빈 방으로 이사를
강행 하셨습니다.
열쇠를 받고 옮기는 도중 잠시 거기를 비운사이
학교에서 그 방 자물쇠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인문동 3층에서 짐을 다 빼 놓았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쇠 수리공을 불러 그 방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학교에서는 이사를 못하도록 그 방 창문쪽을 막아 놓고 있고
교수님과 몇몇 학생들이 412호와 원래 인문동 3층 끝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지금 읽어 보시고 총학 분들이 계시면 무은재 기념관으로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함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__)
eldercrow
2005/03/18 18:43
2005/03/1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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